본문 바로가기

일상

총각 그냥 서 있을 곳이라도 데려다줘.

 

 


선릉역 분당선, 
저녁 7시의,퇴근길 지하철 플랫폼....
퇴근하는 사람들과 분당으로 가려는 사람들로 인해 플랫폼은 발 디딜곳이 없었다.

mp3를 귀에 꽂고 흥얼거리는 학생들..
퇴근길, 피곤함에 축 처진 직장인들..
여자친구가 사람들한테 치이지 않도록 보호하는 남자친구의 모습
이렇게 플랫폼을 만원으로 채운 사람들은 출발역인 선릉역에서 
그렇게 애타게 열차를 기다리고 한 숨을 쉬고있었다.

그러던중
'똑똑똑 똑똑똑똑똑'

사람들의 웅성거림속에서도 시선을 끌었던 그 '똑똑똑' 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지팡이를 든 시각장애인 할머니였다. 작은 밀짚모자틈으로 흰 머리가 히끗히끗 보이고
두터운 회색점퍼는 낡기만 했다.

할머니는 많은 인파속에서 몇 번을 치이다가 지팡이를 여러차례 땅에 짚고 나서야
플랫폼 맨 앞으로 갈수가 있었다.하지만 사람들은 그 짧지 않은 시간동안 할머니를 빤히 쳐다만 볼뿐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방관자 효과"
(주위에 사람들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되는 현상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
때문이였는지 왜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마찬가지로 나 역시도 선뜻 용기가 나질 않았다.
관심받는 시선이 부담스러웠을까?


 



"띵띵띵띵 지금 열차가 도착하고 있습니다.승강장에 계신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안전선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빠앙하는 소리와 함께 열차가 플랫폼 안으로 들어와서 멈출때까지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그 할머니를 부측해서 안내하거나 도와주지 않았다.
분당선의 출발역인 선릉역은 도착할때 좌석이 텅텅비어있어서  앉기위해서 였는지
혹은"누군가가 도와주겠지" 하는 방관자 효과 때문이였을 거다.


그때.
"할머니 제 팔짱끼세요"
나도 모르게 할머니 옆으로 다가가 할머니의 팔짱을 끼며 부측을 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일도 아니고 당연할수 있는 일인데 그 당시에는 생각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한 행동이라서 나 자신한테 놀랐다.
그냥 그 방관자효과에 놓여진 주변 공기가 싫었었나보다.
그리고 사람들로 가득차서 발디디기도 힘들었지만
그렇게 할머니를 부측하며 노약자석으로 힘들게 도착했는데

(아! 젠장!!)

맨 앞칸에 타서 그런지 있어야할 노약자 좌석은 없고 은색의 서있을 손잡이 봉만 보였다.

(할머니를 이쪽에다가 둘수도 없고 어쩌지...)

난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지켜만 보던 사람들을 원망하며
어리석게도 반대쪽 노약자석으로 할머니와 함께 머나먼 길을 떠났다.
땀은 비오듯이 쏟아졌고 도와주려고 했던 건데 일이 이상하게 꼬여버렸다.
사람들은 시각장애인 할머니 팔짱을 억지로 끼고 반대편으로 사람들을 뚫고 가는 나를
지켜보기만 할 뿐이였다.
사람들이 빼곡해서 앉을 곳 조차 보이질 않았고, 보이지도 않는 앉아있는 사람들을 깨워서
"이 할머니 장애인인데 자리좀 비켜주세요"라고 말할 상황도 아니였다. 당황스러웠고
그저 노약자석 만 생각이 났고 그렇게 그 곳으로 향하기만 했다.



그때


"총각 그냥 서 있을 곳이라도 데려다줘"
할머니의 나즈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도와줄려면 좀더 똑똑하고 현명하게 도와주지 못한 내가 후회스럽고 창피했다.
어쩌면 내가 앞장서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다른 현명한 사람이 더 좋은 방법으로 할머니를 앉게 해드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사람들을 뚫고 지나가느라고 할머니의 팔짱을 무의식으로 세게 잡아당겨서 할머니가 불편해할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하애졌다.

그렇게 난 바보같이 할머니를 문 옆 기둥에 세워드리고 앉게 해드릴 자리를 찾고 있는데
다행히 고마우신 나와 눈이 마주친 한 아주머니가 자리를 양보해주셔서
그렇게 할머니를 자리에 앉혀드렸다.


그리고 다음역인 한티역에서 난 내렸다.
목적지가 한참인데도 그냥 몸이 저절로 내려졌다.
한티역의 벤츠에 앉아서 고개를 푹숙이고 다음열차가 올때까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도와줄거면 확실하고 남자답게 도와주지 그랬어.사람들한테 "자리좀양보해주세요"라고 크게 외쳐보기라도 할걸.조금더 현명하고 완벽하게 도와줄수 있지 않았을까?"




 


똑똑하고 노련한 레브라도 리트리버처럼 말이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인의 취향은 존중하지만 저는 패스해주세요!  (17) 2011.04.03
저녁반찬은 어떤 걸로 드시나요?  (22) 2011.04.02
잡식성 꿈은 이제그만!  (32) 2011.03.27
저기요 오빠....  (21) 2011.03.18